성범죄 혐의는 수사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삶을 뒤흔듭니다. 의뢰인은 지인과의 만남 이후 서로의 동의 아래 있었던 일이라 믿었던 그날의 일로, 준강간과 카메라등이용촬영이라는 가장 무거운 이름의 고소장을 받아들고 사무실을 찾아오셨습니다. 실형과 신상등록이라는 단어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사건일수록 억울함을 크게 말하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성범죄 사건은 고소인의 진술을 중심으로 수사가 진행되는 경향이 강하고, 피의자의 감정적인 호소나 정리되지 않은 해명은 오히려 진술의 일관성을 해치는 재료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사건의 방어는 처음부터 끝까지 '기록'으로만 말하기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쟁점은 두 갈래였습니다. 준강간 혐의에서는, 법이 정한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가 있었는지 그리고 그 상태를 이용한다는 고의가 있었는지. 술을 마셨다거나 잠이 들었다는 사실만으로 항거불능 상태를 단정할 수 없다는 판례의 취지를 짚고, 당시 고소인이 정상적인 판단과 의사결정을 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능동적인 행위들을 객관적 자료로 재구성해 제시했습니다.
카메라등이용촬영 혐의에서는 촬영의 경위가 다투어졌습니다. 실제 촬영 전후의 정황과 배치되는 주장, 수사 과정에서 번복된 핵심 진술의 지점들을 구체적으로 지목하고, 객관적 기록과 어긋나는 부분을 하나하나 대조했습니다. 이렇게 정리한 내용을 세 차례에 걸친 변호인 의견서로 수사팀에 제출했습니다.
경찰은 두 혐의 모두에 대해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불송치(혐의없음) 결정을 내렸습니다. 사건이 검찰로 넘어가기 전에 종결되면서, 의뢰인은 장기 수사와 재판이라는 압박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돌아보면 이 사건에서 제가 한 일은 누군가를 이기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흩어져 있던 그날의 기록들을 시간 순서대로 제자리에 놓아, 기록 스스로 말하게 한 것뿐입니다. 진실 공방이 되어버린 사건일수록 목소리의 크기가 아니라 기록의 정밀함이 결론을 만듭니다 — 이 사건이 다시 확인해준 원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