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에서 출석요구 연락을 받은 날, 의뢰인은 자신이 '누군가를 지속적으로 괴롭힌 사람'으로 고소되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구속되는 것은 아닌지, 전과가 남는 것은 아닌지 —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조사 날짜를 앞두고 사무실을 찾아오셨습니다.
고소장의 취지는 의뢰인이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반복적으로 연락하며 불안감을 주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억울한 마음이 앞서는 상황일수록 위험한 것이 있습니다. 조사실에서 감정적으로 호소하거나, "연락한 건 맞지만 괴롭힐 뜻은 없었다"고 서둘러 말해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진술은 행위 자체를 인정하는 것으로 기록될 수 있고, 스토킹 사건에서는 행위의 반복성이 확인되면 의도와 무관하게 혐의가 인정될 여지가 커집니다. 그래서 첫 조사에 들어가기 전, 말할 것과 말하지 않을 것부터 함께 정리했습니다.
이 사건의 쟁점은 두 가지였습니다. 의뢰인의 연락이 상대방에게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일으킬 만한 '일방적' 행위였는지, 그리고 거기에 '정당한 이유'가 있었는지.
먼저 두 사람의 관계와 사건 전후 상황, 연락이 오간 시점과 빈도를 타임라인으로 정밀하게 재구성했습니다. 국정원에서 정보를 다루며 몸에 익힌 방식 그대로, 주장이 아니라 기록이 말하게 하는 작업입니다. 고소하는 쪽이 제출한 자료만으로는 전체 맥락이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사건에서도 의뢰인 쪽에 남아 있던 삭제된 대화와 통화 기록을 복원하자, 겉으로는 일방적 연락처럼 보였던 흐름의 이면에 상호 간의 필요에 의한 소통이 있었다는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복원된 대화 내역과 시각화한 타임라인을 토대로, 의뢰인의 행위가 스토킹처벌법이 정한 구성요건 — 상대방 의사에 반한, 정당한 이유 없는, 지속적·반복적 행위 — 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변호인 의견서를 수사팀에 제출했습니다.
경찰은 제출된 의견서와 자료를 검토한 끝에 "범죄가 인정되지 않아 혐의 없음"을 이유로 불송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고소장이 접수되고 약 석 달 만이었습니다. 의뢰인은 전과 기록 없이 일상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이 사건이 남긴 것이 있습니다. 스토킹처벌법은 꼭 필요한 법이지만, 관계가 틀어진 자리에서는 같은 기록이 전혀 다른 이야기로 읽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런 사건일수록 목소리를 높이는 쪽이 아니라, 기록을 온전하게 복원하는 쪽이 이깁니다. 조용히, 그러나 치밀하게 — 이 사건은 그 원칙을 다시 확인해준 사건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