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문을 나서는 순간, 세 사람이 나를 둘러쌌습니다. "변호사가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한 분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습니다. 분노보다는 절규에 가까웠습니다. 제가 방금 법정에서 진행한 피고인 신문이, 제 의뢰인에게는 유리했지만 그분의 아들에게는 불리한 내용이었습니다. 법정경위가 뛰어나왔고, 판사님까지 나오셔서 그분들을 진정시켰습니다. "변호인에게 그러시면 안 됩니다." 결국 저는 판사님의 안내로 일반인 출입구가 아닌, 판사용 뒷문으로 빠져나왔습니다.
당시 스물아홉이었던 저는 '사태를 잘 수습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폭력 사태 없이 무사히 법정을 빠져나왔으니까요. 그런데 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이 자꾸만 떠오릅니다.
그때 제가 했어야 할 일은,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습니다.
법정 안에서 저는 제 역할에 충실했습니다. 의뢰인의 말을 경청했고, 그것을 법적 언어로 정리해 법정에 제출했습니다. 상대방 피고인이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의뢰인의 진술을, 저는 논리적으로 잘 풀어냈습니다. 변호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법정 밖에서는 달랐습니다. 그곳에는 법률가가 아니라, 누군가의 가족들이, 자신의 아들에게 책임을 묻는 변론을 듣고 무너지는 부모가 있었습니다. 제 신문이 아무리 정당하고 합법적이었어도, 그분들에게는 자식을 더 깊은 구렁텅이로 밀어넣는 칼날처럼 느껴졌을 겁니다.
저는 그 순간, 제 안전과 법적 정당성만을 생각했습니다. '내가 뭘 잘못했나?' '이건 변호인의 당연한 의무인데?' 그래서 판사님의 보호 아래 빠르게 자리를 피했습니다. 그분들의 분노가 부당하다고 생각했고, 제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습니다. 그분들이 원했던 건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들어주는 사람,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들의 절박함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필요했던 겁니다. "제 아들은 그런 아이가 아닌데요." "저희 아이도 누군가의 지시를 따랐을 뿐인데요." 그 말을 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시스템의 논리에 밀려나야 했던 겁니다.
법정은 누군가의 편에 서야 하는 구조입니다. 한쪽 변호인의 유리한 주장은 필연적으로 다른 쪽의 불리한 현실이 됩니다. 그것이 대립 구조의 본질이고, 우리는 그 안에서 각자 맡은 역할을 합니다. 저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그 지식이 저를 더 단단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더 메마르게 만들었다는 것을 뒤늦게 이해했습니다.
만약 그때로 돌아간다면, 저는 그분들과 5분이라도 이야기를 나눴을 것입니다. "죄송합니다, 부모님 심정 이해합니다. 하지만 저도 제 의뢰인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입장입니다"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설령 그분들이 저를 밀치거나 욕을 하더라도, 그 감정을 온전히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문제 삼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법적 대응이 아니라 인간적 인정이었으니까요. '당신의 고통을 봤습니다. 당신의 분노가 이해됩니다. 이 상황이 당신에게 얼마나 견디기 힘든지 압니다.' 그 한마디면 됐을 겁니다.
그 사건 이후로, 저는 법정 밖의 사람들을 더 자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승소한 쪽의 환호 뒤에 가려진 패소한 쪽의 침묵, 유리한 증언을 한 증인 옆에 선 불리한 입장의 가족들, 판결문에 담기지 않는 복잡한 인간관계들. 법은 선을 긋지만, 사람들의 삶은 그 선 너머로 뒤엉켜 있습니다.
그날의 그 가족분들께, 이제라도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들의 분노는 정당했습니다. 제가 그 자리에서 들어드리지 못한 것, 미안합니다. 당신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려 애쓴 그 마음, 저도 같은 변호인으로서 너무나 잘 압니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는, 비슷한 고통 속에 계신 분들께도 전하고 싶습니다. 법정에서 누군가 당신에게 불리한 말을 하더라도, 그것이 당신의 전부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시스템이 당신의 목소리를 다 담지 못하더라도, 당신의 이야기는 여전히 가치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부탁드립니다. 그 분노와 절망을 혼자 끌어안지 마세요. 누군가에게 털어놓으세요. 변호사든, 가족이든, 친구든. 들어줄 사람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저는 그날, 뒷문으로 도망쳤습니다. 하지만 진짜 도망친 것은 제 책임이 아니라, 한 사람의 고통과 마주할 용기였습니다. 그 용기를 이제는 조금 더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늦었지만, 그래서 더 진심으로, 그날의 당신께 고개 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