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치소 접견실에서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사법연수생으로서 맡은 몇 개의 국선변호 사건 중 하나였습니다. 서류를 몇 번이나 다시 확인하고, 질문 목록을 적어갔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런데 당신의 눈빛이 나를 안심시켰습니다. 이상하게도, 마약 상습범이라는 기록과 어울리지 않게 맑았습니다.
"이번 건은 진짜 안 했어요."
당신의 말에는 거짓이 없었습니다. 경험이 적은 나였지만, 그건 알 수 있었습니다. 이번만큼은 정말 억울한 일이라는 것을. 그런데 당신이 이어서 한 말이 나를 당혹스럽게 했습니다.
"근데 뭐, 유죄 나와도 상관없어요. 어차피 제가 안 걸린 게 더 많으니까요."
변호인으로서 나는 '이번 사건'만을 봐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증거를 검토하고, 법리를 따지고, 절차를 확인하는 것. 과거는 양형의 참고사항일 뿐, 유무죄 판단과는 별개라고. 그게 법의 원칙이고, 정의의 작동 방식이라고.
하지만 당신은 달랐습니다. 당신은 '이번 사건'이 아니라 '당신의 삶 전체'를 보고 있었습니다. 걸리지 않았던 수많은 밤들, 운 좋게 피해갔던 순간들, 그 모든 것이 당신에게는 하나의 장부처럼 느껴졌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이번 한 번쯤 억울하게 처벌받는 것도 '균형'처럼 여겨졌던 거겠지요.
나는 당신을 설득하려 했습니다. 서툴게, 교과서에서 배운 말들로. 이번 사건은 이번 사건일 뿐이라고, 억울한 건 억울한 거라고, 당신에게는 무죄를 주장할 권리가 있다고. 하지만 당신의 의지는 약했고, 그것은 체념이 아니라 어떤 받아들임처럼 보였습니다.
결국 유죄 판결이 났습니다. 나는 변호인으로서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의뢰인의 의지가 약한 만큼, 나의 변론도 힘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제가 더 경험이 많았다면, 더 노련한 변호사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떨칠 수 없었습니다.
그날 나는 무력함을 느꼈습니다. 초보 변호인으로서의 한계도, 당신의 체념 앞에서의 무력함도.
판결 후 당신을 만났을 때, 당신은 정말로 억울해하지 않았습니다. "괜찮아요, 선생님도 애쓰셨어요"라고, 오히려 나를 위로하던 당신의 표정을 나는 아직도 기억합니다.
사건이 끝나고 오랫동안, 나는 이 질문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세상에 억울한 일들이 정말 다 억울한 일일까? 한 순간만 떼어놓고 보면 분명 부당하고 불공평한 일이지만, 그 사람이 살아온 과정 전체를 놓고 보면 어떻게 될까? 거기에는 우리가 모르는 다른 균형이 있는 건 아닐까?
반대로 생각해봤습니다. 운이 좋았던 일들, 위기를 모면했던 순간들, 기적처럼 풀렸던 문제들. 그것들이 정말 단순한 '행운'이었을까? 그 사람이 그 전에 쌓아온 무언가가 있었기에, 그래서 그때 그렇게 된 건 아니었을까?
법정은 '지금 이 사건'만을 다룹니다. 그게 법의 공정함이고, 또 한계입니다. 하지만 삶은 그렇게 구획되지 않습니다. 모든 순간이 연결되어 있고, 보이지 않는 인과의 그물망 속에서 우리는 살아갑니다.
당신은 그걸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막 법을 배운 저보다 더 깊이.
지금 당신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아마 출소하셨겠지요. 새로운 시작을 하고 계실지, 아니면 또다시 같은 길을 걷고 계실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날 제가 하지 못했던 말을 이제야 전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억울해하지 않았다고 해서, 제가 당신을 덜 변호해도 되는 건 아니었습니다. 당신의 체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당신을 존중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그건 제 미숙함을 합리화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더 나은 변호인이었다면, 당신의 그 체념을 깨뜨릴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당신이 보여준 그 '전체를 보는 시선'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도 말하고 싶습니다. "어차피 안 걸린 것도 많으니까"라는 생각이, 당신 스스로를 계속 그 삶 속에 가두는 건 아닐까요? 과거의 빚을 현재로 갚는 방식이 아니라, 그냥 지금부터 다른 장부를 펴는 것도 가능하다고, 그렇게 말해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그런 말을 할 만큼 담대하지도, 설득력 있지도 못했습니다.
누군가는 한 번의 억울함을 평생 안고 살아갑니다. 또 누군가는 수많은 억울함을 겪으면서도 그저 그런 날로 여기며 살아갑니다. 반대로 누군가는 작은 행운 하나에 감사하며 살고, 누군가는 큰 행운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갑니다.
무엇이 정말 억울한 일이고, 무엇이 정말 운 좋은 일인지, 나는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가 스스로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어차피 나는 이런 사람이니까"가 아니라, "이제는 다른 사람이 되어보겠다"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과거의 빚을 갚는 것보다, 미래의 첫 장을 여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날, 억울하지 않다던 당신에게 제가 더 강하게, 더 설득력 있게 말하지 못한 것이 미안합니다. 그리고 그때 더 나은 변호인이 되지 못한 것도 미안합니다.
지금이라도 말합니다. 당신은 더 나은 이야기를 살 자격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