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가을, 검찰 시보로 실무수습을 하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밤에 갓길에 주차된 대형 트레일러를 미처 보지 못하고 충돌한 사고였습니다. 조수석에 타고 있던 여성분이 세상을 떠났고, 운전하던 분은 큰 부상 없이 살아남았습니다. 조사실에 앉은 그분은 말이 없었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제 질문에만 짧게 대답할 뿐, 다른 어떤 말도 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조서를 작성하며 저는 사실관계를 확인했습니다. 두 분 모두 한때 결혼했던 경험이 있었고, 각자 자녀도 있었습니다. 여성분은 남편과 사별했고, 남성분은 오래전 이혼했습니다. 지인의 소개로 만나 교제하다가, 얼마 전에야 재혼을 결심했다고 했습니다. 여성분이 돌아가신 남편의 가족들과 여전히 인연을 이어가고 있어서 망설였지만, 이제는 새로운 시작을 하기로 했다고요. 그리고 그 결정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고가 났습니다.
"처벌받겠습니다."
그분이 한 말은 사실상 그게 전부였습니다. 변명도, 호소도, 설명도 없었습니다. 저는 사회초년생 수준의 경험밖에 없었고, 법대로 처리하는 것 외에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몰랐습니다. 그저 안타까운 마음으로 조사를 마쳤습니다.
며칠 후, 친한 친구 몇 명과 저녁을 먹다가 이 사건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마음 한구석에 계속 남아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때 한 친구가 농담처럼, 하지만 진지하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죽은 남편이 샘이 나서 데려간 거 아닐까?"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 사건을 '과실치사'라는 법률적 프레임으로만 봤습니다. 과실의 정도, 인과관계, 양형 기준. 그것이 제가 배운 전부였고, 그것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친구의 그 한마디는, 제가 보지 못한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일깨웠습니다.
죽은 이의 사랑. 남겨진 이의 미안함. 새로운 시작에 대한 죄책감. 운명이라 부를 수밖에 없는 잔인한 우연. 법은 이런 것들을 다루지 않습니다. 법정에는 피고인과 피해자만 있을 뿐, 보이지 않는 죽은 이의 자리는 없습니다.
물론 친구의 말은 그저 하나의 해석일 뿐입니다. 미신이라 할 수도 있고, 과도한 의미 부여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습니다. 세상에는 법적 판단만으로는 온전히 담아낼 수 없는 이야기들이 있다는 것. 어떤 사건 뒤에는 법률 용어로는 설명되지 않는, 그러나 당사자에게는 가장 절실한 의미들이 있다는 것. 그날 저는 그걸 깨달았습니다.
이후 변호사가 되어 수많은 의뢰인을 만나면서, 저는 이 깨달음을 자주 떠올립니다. 법률상담을 하면서도 저는 질문합니다. 이 사람이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법적 승소? 금전적 배상? 아니면 그 너머의 무언가? 용서? 인정? 위로? 혹은 그저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온전히 들어주기를?
그날 조사실에서 말없이 앉아 계시던 그분께 하지 못한 말이 있습니다.
당신의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저는 다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 무게만큼은 조금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법은 당신을 처벌할 것이고, 그것으로 사건은 종결될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의 삶은 계속될 것이고, 그 삶 속에서 당신은 법이 닿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와 대면해야 할 것입니다.
법률가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입니다. 하지만 한 사람으로서, 당신의 나머지 삶이 견딜 만하기를, 그리고 언젠가는 다시 미소 지을 수 있기를 조용히 바랍니다.
세상에는 법으로 재단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들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의미를 찾고 살아갑니다. 그것이 틀렸다거나 옳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다만, 존중할 뿐입니다.